20180422 offline 사진일기

in Team ITsooda , by fallingg

본격적으로 함께 시작하기로 하기에 앞서, 왠지 모르게 다가오는, 온라인에서 서로 주절주절 하기만 하면 아무도 진행하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있었다. 그래서 2주에 한 번은 시간 되는 사람들끼리 만나기로 했고, 어제가 그 첫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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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사는 곳이 비슷하지만 조금씩 달라 항상 어디서 만날 지 정하는 데 시간을 쏟곤 하는데, 항상 집과 가까워서 참석률 100%를 이어나가고 있다(개꿀). 만나서 뭐 딱히 거창한 걸 하지는 않고, 그냥 각자 일을 한다. 무언가를 할 때 아무래도 내가 주도적인 액션을 취하다보니 같이 시작하기로 한 그들은 어느 순간 나를 편집장이나 팀장, 심지어는 클라이언트 급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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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오후 6시 30분부터 블로그 개발에 있어 발견한 이슈들을 공유(라고 쓰고 일방적으로 던진다고 읽는다)하고, 고쳐 나가고, 각자 할 일을 하고, 수다도 조금 떨고, 하다보면 어느샌가 불특정한 한 주제에 모두가 과몰입하게 된다. 이런 점이 직접 오프라인에서 만나 무언가를 하는 것의 장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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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 데 없이 과몰입에 빠지다 보면 밥 때도 놓치고 후회하기 마련이다. 나는 점심도 먹지 않은 상태로 나왔기에 도착해서 샌드위치를 사 먹어서 딱 좋은 타이밍에 식사하러 출발. 이 모임은 참 신기한 것이, 뭘 먹어야만 해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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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함께 졸업한 학교 후문에 꼭 이런 느낌의 고깃집이 있었다. 거긴 삼겹살이랍시고 사실은 구이용으로 퍽퍽해서 잘 먹지 않는 전지살을 떼다가 팔았지만, 가격만큼은 매우 저렴하여 배 터지게 먹을 수 있었던 좋은 곳이었다. 대통주라는 요상한 술도 함께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여 신나게 떠들며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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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임이 또 신기한 것이,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혹은 완전히 다르지만 조금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다보니, 동네 친구도 아니거니와 직장동료도 아니다보니 일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다른 곳에서보다는) 재밌다. 이 분들을 자주 뵙고 싶은 수많은 이유 중 하나. 그런 의미에서 자리가 파할 때 쯤 나왔던 이야기가 있었는데,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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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시작, 케밥

이 이야기의 시작은 2012년 3월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왜인지는 아직도 알 수 없지만 그 당시 배움에 대한 갈망이 넘쳤던 다섯 명의 경영대 문돌이 2학년 학생들이 이를 해소하기 위해 모여 ‘케밥’이라는 이름의 스터디 모임을 진행하기에 이른다.

케밥은 범(가칭)이라는 인물에 의해 지어진 이름으로 기억하는데, 각자의 관심 분야 내의 사례를 통해 시사점을 도출하자는 목적에 맞게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를 어떻게 줄이고 줄여 만들어졌던 것 같다. 돌아보니 정말 어이없기 그지없다. 이외에도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총 5명이 함께 참여하였고, 매주 수요일 수업을 마치는 시각에 학교 세미나실에 모여 각자 다른 관심분야의 주제를 가져와 발표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배움에 대한 갈망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비공개적인 활동을 했기 때문에 큰 규모의 인원 추가는 없었지만, 배움에 대한 갈망에 각자의 관심분야에 대한 흥미까지 더해져서 한 번의 펑크 없이, 그 해 12월 31일까지 모임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꽤나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아 그 당시 모아두었던 자료들을 기반으로 날짜를 추정해본 결과, 2012년 12월 31일 그 날을 이후로 그 어떠한 기록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거짓말처럼 케밥은 공중분해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입대. 요즘은 군대를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상황들이 속출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나라에서 못 데려가서 안달이었다. 나의 경우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바로 입대하여 군복무를 일찍이 마친 상태에서 나머지 구성원들을 만난 상황이었고, 준몬은 이런저런 사정 탓에 입대를 느지막히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구성원들은 자유로울 수 없었고, 그렇게 그들은 나라의 부름을 받고 떠났다.

근데 케밥이 왜?

당시 함께 모였던 다른 인원들은 케밥을 어떻게 기억할 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와 준몬은 그 때를 가장 열정넘쳤던 시기로 추억해왔다. 그 이유는 우선 강압적이지 않았고, 자율성이 보장되었던 탓이 가장 큰 것 같다. 이제와 그 시절 자료들을 보니 조금 부끄러운 감도 없진 않지만, 그 당시 케밥이 추구하던 목표는 크게 세 가지였다.

  • 다양성 확보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의 다양한 관심분야를 바탕으로 다양한 지식을 공유)
  • 느린 사고(slow thinking)
  • 자율적, 창의적 학습

이는 뒤에 세워질 학과 내 동아리의 모티브로 이어졌고, 케밥과는 다르게 공개적으로 회원을 모집하면서 현재 학과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동아리가 되었다(는 건 나만의 생각이지만). 물론 나와 준몬 역시 설립에 함께 참여하였고, 활동도 지속하다가 이제는 원로(?)가 되어 조용히 깨톡방만 눈팅중이다. 나이 먹는 게 벌써부터 이렇게 서럽다.

뭐 아무튼간에, 모두가 그 시절을 그리워했다 뿐이지 지금껏 같이 이렇다할 활동을 하진 않았다. 그냥 각자 눈 앞에 닥친 일들을 해결하면서 살았고, 그냥 가끔 만나 맥주나 한 잔 기울이면서 아이디어나 교환하던 정도였다. 그리고 약 2년 전, 추억팔이를 하던 둘 사이의 공통된 목표와 방향성이 잡혔고, 그게 바로 ‘케밥 때 처럼 꾸준히 목표를 향해 가자’는 내용이었다.

각자의 3년 반, 결국 방향은 비슷했다

2년 전 어느 날, 2012년 12월 31일 이후로 약 3년 반이 지난 시점에서 각자 해왔던 일들에 대해 돌아봤다. 나의 경우 동일 전공으로 대학원 진학을 선택해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대학원 생활 중 코딩에 대한 열망이 생겨 얕은 수준의 컴퓨터 언어를 익혔고, 이를 데이터 분석에 접목해서 무언가 성과를 내보고 싶어 학과 내 다른 후배 수달과 공모전에 나가 2등 정도로 추정되는 상을 받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물론 나는 하찮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나마 경험이 많았던 수달이 거의 전담하다시피 했고, 버스를 열심히 흔들었던 나는 무임승차를 하면서도 뭘 알아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준몬은 자칭 돈자생(돈없는 자취생)으로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각종 웹언어를 짤막하게 습득하여 주변 지인들의 홈페이지 관리를 도맡아 했다. 더불어 stackoverflow에서 배운 실용적이며 얕은 언어를 발전시켜 무언가 유형의 product를 만들고자 하는 목표 아닌 욕심을 가지게 되었고, 본인의 애매한 포지션에 대한 회의감과 함께 언어에 대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려고 마음만 먹고 있었다(고 나는 이해했다).

그렇게 서로가 가진 생각들을 공유하다 보니, 언어의 기본부터 쌓아가자는 공동의 목표가 잡혔다. 또한 케밥 시절에 대한 좋은 추억들을 바탕으로 다시 한 번 똑같이 해보자는 방향성 역시 생겼다. 평소 IT분야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둘 다 말 많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웠기에 팀 이름은 예전에 지어두었던 ITsooda를 가져다 쓰기로 했고, 그 상태로 또 약 2년을 보내게 된다. 둘로는 부족했던걸까? 하며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인원을 두 명이나 더욱 추가하게 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옛 말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각자 제 멋대로 노를 저어서는 배가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맴돌기 마련이다. 원래 준몬과 나 둘 뿐이던 시절에는 조그맣다고 생각했지만 공부할수록 조그마한 것이 아닌 것을 알게 된 한 가지의 프로젝트를 가지고 시작하려고 했었다. 우리같이 문돌이로 태어나 어깨너머로 배운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멀디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일종의 목적지가 필요했고, 흥미를 최우선으로 두기에 우선 도달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으며, 우리의 체력으로 쉽지도 어렵지도 않게, 적당히 힘 빠질때 쯤 닿을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이런저런 목적지들을 후보에 두고, 최종적으로 한 가지를 고른 것이 ‘프로젝트 외심’이었다.

프로젝트 외심은 내가 수능 끝난 망나니 고3때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세 명의 망나니가 치킨을 먹기로 하고선 서로 본인 집에 가까운 곳으로 장소를 정하려고 발악하여 약속 장소가 정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때 한 명의 아이디어로 지도상에 각자의 집 위치를 찍고, 삼각형과 그 삼각형의 외접원을 그려 외심지점에서 만나기로 했던 것에 착안하여 웹 혹은 앱으로 해당 기능을 구현하는 것 정도로 프로젝트 외심을 정의할 수 있겠다. 물론 이와 비슷한 기능을 제공하는 서비스들이 꽤나 존재했었지만, 그냥 우리 힘으로 해본다는 것에 의미를 둔 프로젝트였다.

이러한 목적지는 사람이 늘면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다르기에, 더욱 수월할 것으로 보였으나, 사공이 많아지면서 앞서 이야기했던 것과 같이 제자리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우리는 더이상 학교에서 밤을 새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청춘 대학생이 아니었고, 오늘 무리하면 내일 망하는 삶을 살게 되면서 자연스레 각자가 맡은 “업무의 연장선”에서 문제를 바라보아야만 했다. 물론 업무를 더 잘 하거나 더 편하게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보니 자연스레 그러한 분야에 더 몰두하게 되는 것도 있을 듯 하다. 이러한 이유로 만나거나, 혹은 온라인에서 무언가를 해보자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공감은 하지만 무언가 새로운 걸 하는 것은 잘 모르겠다”는 식의 결론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큰 틀에서는 각자가 비슷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아직도 생각하나,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분명히 각자의 느낌이 살짝살짝 다르다. 이는 현재 각자가 처한 환경과도 분명히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우선 각 사공들은 모두 경영학부를 졸업했다. 졸업 후 두 명은 여러 인고의 과정을 거쳐 현업 개발자가 되었고, 한 명은 공학석사가 되어 문돌이 세탁에 성공했다. 나는 경영학 석사를 취득하고 이제서야 늦은 문돌이 세탁에 도전하는 중이다. 어떻게 보면 모두가 업으로 개발(?)을 하고 있지만, 느낌이나 목적이 조금씩 다른 것은 분명하다. 그러다보니, 모여서 뭘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각자가 서로 다른 부분에서 좀 더 크게 노를 젓는다면, 맴돌게 되는 원의 크기가 커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문돌이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서로가 서로의 분야에 대해 소개하고, 나머지가 그에 대해 간략히만 이해하더라도 더욱 넓은 식견과 사고방식을 가지게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개발의 ㄱ도 제대로 모름에도 어쩌다 우연히 주워듣게 된 Agile 소프트웨어 개발 선언을 보며 우리는 우리의 방향성을 잡았고, 아래와 같다.

우리는 어줍짢은 코딩을 공부하고,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문돌이 탈출의 더 나은 방법들을 찾아가고 있다. 이 작업을 통해 우리는 다음을 가치 있게 여기게 되었다.

  • 최적화와 효율성보다 삽질과 노가다를
  • 창의적인 개발보다 쓸모없는 즐거움을
  • 화려한 계획보다 우발적인 행동을
  • 생산적인 결과물보다 덕질에 가까운 과정을

가치 있게 여긴다. 이 말은, ‘보다’의 왼쪽에 있는 것들도 가치가 있지만, 평균 이하의 우리는 ‘보다’의 오른쪽에 있는 일들도 해내기 벅차다는 것이다.

얼마나 할 것인가?

우선은 2주에 하나씩 각자의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그리고 2주마다 오프라인에서 만나 각자의 내용에 대한 세미나도 하기로 했다. 늦거나 지키지 못하면 밥을 사기로도 했다, 모두가 동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쓰잘 데 없이 프롤로그에 힘을 너무 많이 쏟아서 나는 아마 다음 주에 밥을 사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우선은 본인들이 하고 싶은 내용들로 채워가겠지만, 중간중간 서로 함께 만들어낼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이 생긴다면 그때그때 무언가를 할 지도 모르겠다. 길다면 긴 글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2주라는 시간이 늘 지켜지는 아름다운 세상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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